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랑스 침공 (문단 편집) === B집단군의 딜 방어선 공격 === A집단군이 아르덴 일대와 마스 강을 돌파하는 동안 B집단군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다. 시간을 살짝 거슬러 올라간 5월 12일[* 구데리안의 19기갑군단은 막 스당일대에 도착, 라인하르트의 41기갑군단 전체가 아직도 아르덴 삼림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점.], B집단군은 주공 방향에 혼선을 주기 위해서 A집단군의 우측면에서 강력한 조공을 펼치고 있었다. 독일군은 딜 방어선의 약점인 장블루 갭을 향해 진격했고, 한편 연합군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딜 계획을 발동한다. B집단군은 이 부대를 최대한 오래 붙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는데, 그 선두에 선 것이 회프너가 지휘하는 16기갑군단이었다. 이에 맞서 프랑스에서는 1군 예하 프리우 장군이 지휘하는 기병군단이 나섰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가장 날카로운 창 끝인 기병군단과 16기갑군단은 장블루 갭의 동쪽에 위치한 안뉘(Hannut) 일대에서 대대적인 정면 충돌을 펼치게 되었다. 5월 12일 오전, 안뉘에서 양군이 격돌했고 독일 기갑부대는 전차전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 안뉘 전투에서 부딫친 전차의 숫자는 프랑스 415대와 독일 623대로 독일군이 우세한 것으로 보이나, 16기갑군단 예하의 전차 623대 중 실질적으로 프랑스 전차와 교전이 가능한 3호/4호 전차는 각기 73대/52대에 불과했다. 1호/2호 전차가 대전차전에서 전력외나 다름없고, 거기다 기병군단이 보유하고 있는 장갑차들은 1호/2호 전차에 필적할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병군단 예하에 있던 AMR-ZT-63의 전투력은 1호/2호 전차와 비등한 수준이었고, 90여 대의 파나르 178 장갑차는 4호 전차를 격파할 수 있는 25mm 주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기갑부대 또한 기갑전 교리의 미확립/무전기의 부족으로 인해 제병협동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독일 공군의 맹폭을 받은 프랑스군 기갑부대는 전차전으로 얻은 이점을 다 까먹었다. 한편 구식 선형 전술을 기갑부대에 적용하느라 기병군단은 상대적으로 분산되어 있었는데, 회프너는 이 약점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5월 13일, 16기갑군단은 선형으로 늘어선 기병군단 예하 부대 중 3경기계화사단의 책임 구역에 전체 전력을 집중시켜 돌파에 성공했다. 다만 이때도 전차 교환비는 프랑스군이 훨씬 더 뛰어났다. 프랑스군이 전차 105대를 잃는 동안 독일군은 160여 대의 전차를 잃었던 것이다. 이렇게 안뉘전투 자체는 독일군의 돌파를 저지하려는 프랑스군의 명백한 전술적 승리로 끝났지만 3경기계화사단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전선에서 탈락하자, 2경기계화사단 역시 후퇴해야 했고 곧 프랑스 기병군단 전체가 전장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기병군단은 후퇴하며 제대로 된 지연전조차 수행하지 못했는데, 그저 일렬 종대로 신속한 철수에만 급급했다. 독일군 지휘관들은 이를 노려 프랑스군의 전열에 끼어들었고, 프랑스 포병은 피아식별 문제로 기병군단을 지원할 수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회프너는 딜 방어선 일대까지 빠르게 육박하여 공세를 감행했다. 초기에는 4기갑사단이 큰 피해를 입고 회프너 역시 공세의 중단을 지시했지만, 해당 명령을 수령하지 못한 3기갑사단이 방어선 일부를 돌파하는데 성공하며 최종적으로 16기갑군단 전체가 5월 15일 겜블루 일대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 기간 프랑스의 방어는 독일군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데 성공하였지만 스당 방면에서 A 집단군이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면서 우측방이 위협받자 철수를 결정해린다. 여기에서도 프랑스군은 후퇴한 기병군단을 대대급으로 분할하여 각 보병사단에 배속하는 실책을 저지른다. 이는 프랑스군이 작전술적 차원의 반격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로 인해 A집단군의 측면을 위협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세력인 기병군단은 큰 피해를 입고 그 지위를 상실했으며, 프랑스군은 이제 A집단군의 쾌속진격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 다만 전술적으로는 16기갑군단은 큰 손실을 입었다. 343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던 4기갑사단은 5월 16일 오전 기준으로 137대의 전차만이 가용한 상태였고, 이 중 유의미한 대전차능력을 가진 4호 전차는 4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전황은 대체로 독일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